[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올해는 꽃 길만 걸어요
올해는 꽃 길만 걸어요 12피트 높이, 벽돌로 세운 사각 공간 지금 시간은 멈췄다 불쑥 고개 드는 낯선 히터 소리 높은 의자에 등 누이고 눈을 감는다 뒷걸음 물러선 시간 맞물린 톱니 풀리고 공간 속 긴장도 떠난 홀로 위로 4개, 옆으로 13개 52개 글래스 불락을 통해 햇살의 끈 질긴 구애 여전히 한 해가 가는 줄 새해가 오는 줄 모르는 오후 오랜 날, 오랜 밤 손 등이 거칠고 이마에 주름이 깊은 사이 12 피트 공간은 젊어지고, 색상도 밝아지고, 언젠가 내가 지고 나면 주인은 내가 아닌 이 공간 햇살을 담아 낸 이 따뜻함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공간의 깊은 호흡 12피트 높이 위로 4개, 옆으로13개 모두 52개 글라스 블락의 아무것도 모르는 무심함 햇살 내리는 고요한 쉼 속에 “올 해는 꽃 길만 걸어요” 성가시게 부딪혀 오는 새해 “새해엔 꽃 길만 걸어요” 라고 쓰인 예쁜 연하장을 받아 들고 보낸 사람의 포근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탁자 위 그 카드를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들다가도 문뜩 꽃 길만 걸을 수 있나? 그렇게 살면 좋을까? 살다 보니 꽃 길만 걷는 사람은 주위에 한 사람도 없는 것같이 다. 뭇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한 성공과 부를 거머쥔 사람도, 자녀들이 잘 자라주어 자식 자랑에 신난 사람에게도 알고 보면 힘들고 절망적인 캄캄한 긴 터널을 지나온 것을 알게 된다. 꽃 길만 걸어온 사람은 아직 찾지 못했다. 적어도 꽃 길은 걸을 수 있는 자격과 삶을 바라보는 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꽃 길은 그냥 걸을 수 없다. 그 길은 그냥 펼쳐진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꽃 길은 눈에 보이는 길 만이 아니다. 잠 못 이루는 밤, 뜬 눈으로 지내본 사람은 안다, 밤 하늘 뒤척이는 작은 별의 눈물마저 가슴에 담아본 사람만이 꽃 길을 걸을 수 있다. 아마도 꽃 길의 꽃들은 각자의 걸어온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대면했던 풍경들과,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뿌려져 마침내 피어난 여러가지 향기를 가진 꽃들 일께다. 꽃길은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조물주의 손끝을 빼놓고 자연과 인간의 세계에서는 타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고와 땀, 자신의 아픔을 견디는 시간, 함께 걸어준 누군가의 사랑, 햇볕과 이슬과, 간간히 내리는 비와, 거기에 한가지 더 향기를 펼치시고 품어내는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숨결이 필요하다. 꽃이나 묘목을 심고 바로 그 위에 물을 주면 시들해지다 죽어버린다. “뻗어야겠다, 살아야겠다”는 나무의 욕구가 생기도록 주변으로 물을 주어야 한다. 올해는 주변으로 물을 주며 한 그루 나무를 키우고 싶다. 넓게 허리를 펴고 살아야겠다. 고개 숙이고 땅만 바라다 보다 지나간 세월, 한 겨울의 햇살은 봄볕보다 따뜻하다. 12 피트 높이 벽, 한가운데 52개 글래스 블락을 통해 들어와 앉은 겨울 햇살. 주변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와 내 무릎 위에 어느새 앉은 햇살, 삶은 늘 우울하거나, 기쁘거나, 무심하지만은 아닌 것 같다. “새해 늘 꽃 길만 걸으세요”라고 말하지 않겠지만,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내 마음 속 꽃 길은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디에서나, 어느 때에도 꽃길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는 건 당신만이 가질 수 있는 햇살 같은 축복입니다”라고….(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햇살 사랑 햇볕과 히터 소리